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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언어장애인도 강연을 할 수 있을까?
관리자 조회수:2138 1.251.212.205
2017-11-02 14:59:30

언어장애인도 강연을 할 수 있을까?

‘2017 전국 보조기기 수기공모전’ 수상작 연재-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11-02 11:14:09
국립재활원(원장 이범석) 중앙보조기기센터에서는 보조기기 사용 인식 개선 및 보조기기센터 저변 확대를 위해 ‘2017 전국 보조기기 수기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는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2편, 입상 2편 등 총 7편이 수상했으며, 에이블뉴스를 통해 우수작품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 ‘언어장애인도 강연을 할 수 있을까?’다.


언어장애인도 강연을 할 수 있을까?
차강석


태어난 지 백일무렵 고열에 의한 뇌성마비에 따른 언어장애의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못하면 지능도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심한 뇌성마비라면 더 하고 무시합니다. 제 생각에는 말은 똑바로 나갔는데, 상대방은 못 알아 들었고 저를 무시했습니다.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 대인기피증이 왔고 집에 누가 오기라도 하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숨고는 했습니다. 

대인기피증을 앉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전 극히 소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수업 중에 어딘가에서 의자 밑으로 물이 흘렸습니다. 그러자 제 짝이 울면서 제가 오줌을 쌌다고 했습니다. 전 말을 못해서 부인하지 못했고 심한 뇌성마비로 소극적인 전 오줌싸개란 억울한 낙인이 찍혀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지내다,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것이 샘나서 누나들의 교과서와 참고서로 독학을 했고, 우리 세대의 중증장애인들이 거의 그렇듯이 저도 혼자 지낼 때가 많아 책을 이것저것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짝사랑을 하게 됐습니다.

1997년…… 장애인 동호회의 채팅에서 그녀를 알게 되어 채팅을 자주 했고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모임에서 그녀를 직접 만났고, 모임 내내 그녀가 제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며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모임에서 돌아 온 다음부터 제 마음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찾았고 방황이 시작 되었습니다. 밥을 못 먹고 잠도 안 오고…… 자꾸 비관적인 생각만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도 제 마음을 알고, “오빠와 동생으로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저를 생각해 봐도 참 한심했었습니다. 그녀는 비장애인이었는데 전 심한 뇌성마비, 그녀는 대학 졸업하고 유학(留學)을 준비 중이였는데 전 무학(無學), 그녀는 아름답고 명랑했었는데 전 못 생겼고 침울했으며, 그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전 늘 혼자였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그녀에게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잊으려면 뭔가 다른 굉장히 힘들고 아주 어려운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뭘 하지……? 뭘 하지……?'를 생각하다, 남들이 어렵다는 검정고시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제 장애 때문에 가슴 서늘한 감정을 잊기 위해 초등 과정부터 고등과정까지 거의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응시하여 1년 8개월 만에 합격했고 그때로써는 제 장애에 가장 적합한 사이버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와 NGO과를 복수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재학 중에 정식 등단은 아니지만 4~5회의 상을 수상했으며, 내 글들을 보신 교수님 등…… 사람들마다 계속 노력하면 정식 등단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4학년 때인 2004년 초부터 팔과 다리에 힘이 서서히 빠지더니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병원에서 진찰 결과 “경추 척추관 협착증”이라고 하여 2005년 6월에 수술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의 부작용으로 몸은 더 악화되어 누워만 있어야 할 정도로 꼼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팔과 다리가 상상할 수 없이 굉장히 아프고 점점 감각을 잃어 갔습니다. 소변과 독서 그리고 컴퓨터 작업 등…… 작은 일은 거의 혼자 했는데, 이제 혼자서는 돌아 눕는 것조차 못 하게 됐으니 질식사(窒息死)할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를 활동보조인이 휠체어에 태워 컴퓨터 앞에 앉혀 주면, 왼발로 장애인용 트랙볼을 조작하여 “클리키”란 화상키보드를 사용해서 아주 느리게 글 쓰는 것만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고 장점을 살리며 정체성과 존재증명을 하려면 글 쓰는 법을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에 방송대의 국문과 3학년으로 편입하여 더 배우던 중, 편입한 첫 해에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정보화교육 우수사례 공모전”에 응모하여 “금상”을 수상했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가족부”가 후원한 “위기극복 희망 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하여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시(詩)로 드디어 “제2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당당히 등단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제2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국립재활원에이블포토로 보기 “제2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국립재활원
대학을 졸업하면 장애인 단체에 취직하기 위해서 표현력을 배우려고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사회를 올바로 보는 시각을 갖기 위해 NGO과를 복수전공을 했지만, 사회는 여전히 저를 거부했습니다. 

장애인 단체조차 뇌병변에 언어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저보다 심한 장애를 가졌어도 장애인 단체들에 취직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더듬거려도 사람들과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번 언어장애인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 실망만 하고 생존상태로 살던 중, 저에게도 드디어 사회 진입의 기회가 왔습니다! AAC라는 판도라가 찾아 왔습니다! 제가 AAC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지난 2014년 8월에 개최한 “AAC를 활용한 뇌병변과 언어 장애인 인권강사 양성과정”이라는 교육에서였습니다.

AAC란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입니다. 즉 AAC는, 낱말카드와 수화 심지어 누구나 휴대폰에 설치한 SNS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루고 여러분이 보실 AAC는 앱입니다. 

이것은 뇌병변과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글을 입력하거나 그림을 고르면 소리를 내 주는 것입니다. AAC가 글자를 모르는 장애 아동과 지적장애인에 맞도록 그림 위주로 되어 있으나 저 같은 글자를 아는 장애인들은 글자를 입력하여 사용합니다. 말은 거의 못하는 제가 마음속에 있는 소리를 내서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 ACC.ⓒ국립재활원에이블포토로 보기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 ACC.ⓒ국립재활원
AAC 앱 사용법을 교육실에서 대충 듣고 집에 와서 앱을 실행하여 본격적인 탐구에 들어갔습니다. AAC를 알면 알수록 저를 위한 앱이었습니다. 제 생각을 정확히 타인에게 전달하기에 아주 적합한 앱이었습니다. 

그래서 AAC에 거의 미쳐서 여기저기를 나긋나긋 하게 만져주고 정성을 다해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더니 처음에는 거칠게 반항을 했지만 점점 반항은 잦아 들었고 나근나근 해 졌습니다. 급기야 자신을 다 들어 내 놓아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이제는 AAC를 지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프라인장애인자립진흥회 인권교육.ⓒ국립재활원에이블포토로 보기 라이프라인장애인자립진흥회 인권교육.ⓒ국립재활원
위 교육에서는 AAC를 확실히 배웠고, 장애인인권강사교육은 “(사)라이프라인자립진흥회”의 “라이프라인 아카데미”에서 개최한 “장애발생예방 및 장애인식개선 강사과정”을 7개월 동안 수료했고 시험에 합격하여 “장애인권교육상담사 자격 2급”을 취득했습니다. 

또한 장애인권강사를 잘하기 위하여 다른 사이버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하여 어느덧 졸업했으며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고 강사로서 AAC 관련 단체에 취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가 AAC로 많은 강의를 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는, 제가 다니는 재활병원에서 어머님들께 한 강의였습니다. 그 자녀들은 저 아기 때와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4~5세인데 혼자서 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말도 못하고 목을 가눌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크며 겪었던 이야기와 어머님들께 쓴 소리 그리고 어머님들도 삶을 즐기실 것 등을 이야기 했더니 공감했는지 눈물을 닦느라 바빴습니다. 

그것을 보며 사지마비와 언어장애인 강사로서 하는 말은 비장애인 강사가 하는 말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고 보람과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AAC 인권 강사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한 강의였습니다. 

또한 AAC 인권 강사라는 것이 다른 직업들에 비교에서 손색이 없습니다. 아니, 더 자랑스러워졌습니다! 비장애인들의 직업은 대부분 보수를 보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AAC 인권 강사는 제가 위에서 느낀 것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이 크기에 무거운 책임과 함께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 확신합니다. 

AAC를 익혀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한 행운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 생애에는 해외여행은 없을 줄 알고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AAC를 조금 잘 하다 보니 2015년에는 한국AAC학회에 참가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제AAC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캐나다 토론토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2016년 8월 3일부터 13일의 열흘간이나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AAC가 입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기적을 일으키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며 느꼈습니다. 먼저, 캐나다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장애인연금이었습니다. 최고 1200만원까지 장애인연금을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장애인 할인이나 무료가 없습니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을 함으로서 장애인도 떳떳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의 AAC 기기지원과 주변기기, 그리고 적절한 진단평가, 교육 등의 내용에는 본인부담금 25%가 포함되어 있지만 본인부담금 25%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을 보면 개인의료보험과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는 펀딩 그리고 장애인연금 등이 있어서 무료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기간에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시행하는 장애인정보통신기기보급의 하나로 AAC 기기들을 보급하는데 AAC 기기에 대한 금액의 20%는 본인부담금이지만 채울 수 있는 수단은 말 그대로 개인부담이거나 쥐꼬리만 한 장애인연금 수급자여도 10%의 본인부담금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간에 신청해서 선정되어 10~20%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AAC 기기들만 갖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AAC 기기들을 본인이 직접 구입하려면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부담해야 합니다! 

그것도 AAC 기기들인 앱과 태블릿PC 등을 구입비용이고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거치대와 롤러트랙볼2와 같은 AAC 기기들을 조작하는데 필수인 주변기기 비용은 전부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카야(CAYA)”라는 AAC 단체와 “홀랜드 블루뷰(Holland Bloorview)” 병원의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캐나다는 AAC 지원체계를 생애주기별로 갖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원래 제 꿈이 가당치 않게 교수나 정치가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캐나다처럼 AAC 지원체계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었다면, 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구하여 지금쯤 꿈을 이루었고 업적을 쌓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AAC 덕분에 다시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노력 중입니다. 

또 그 관계자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는 의사의 진단서는 필요 없고, 신청 순위도 상관이 없다. 다만, 그 사람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AAC가 필요한가를 판단해서 보급을 결정한다.”는 말이 아직도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장애용품을 지원 받으려면 반드시 의사의 진단서를 기관에 제출하여 승인받고 장애용품을 구입하고 또 의사의 검수확인서를 발급 받아서 기관에 제출해야 환급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과정을 모르고, 알아도 웬만한 장애인은 장애용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귀찮아서 안 합니다. 우리나라도 가까운 시일에 AAC가 건강보험에 적용될 것입니다. 그럼 의사가 또 개입해서 위와 같은 상황이 재연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관계자의 말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CDAC라는 AAC 단체에서 AAC Self Study Course라고 해서 AAC 교육 메뉴얼처럼 만든 게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AAC 사용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또 AAC를 듣는 사람의 태도도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매뉴얼을 제작하여 보급해야 합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뇌병변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구의 10%인 25만여 명입니다. 이 중 언어장애를 동반한 사람은 49.3%에 이르지만 AAC에 대해 알고 있는 장애인은 14%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비장애인들뿐 아니라 언어장애인 당사자들조차도 의사소통을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언어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의 욕구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AAC는 단순한 보조기기가 아니라 표현의 또 다른 방식입니다.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은 AAC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기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더 많은 언어장애인이 AAC를 통해 장애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시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국립재활원 중앙보조기기센터 공식 홈페이지 참고 : http://www.kna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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